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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무간지옥(無間地獄)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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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단편소설 무간지옥(無間地獄) #8

[단편소설 무간지옥]

• 무간지옥(無間地獄) : 불교에서 말하는 팔열지옥(八熱地獄)의 하나로, 사바세계(娑婆世界) 아래 2만 유순(由旬)되는 곳에 있는 지옥을 말한다.

불교 여러 경전에 묘사된 이 지옥의 모습은 옥졸이 죄인을 잡아 가죽을 벗기고, 그 벗겨낸 가죽으로 죄인의 몸을 묶어 불수레에 실은 뒤 타오르는 불길 속에 넣어 몸을 태운다.

또한 야차들은 큰 쇠창을 불에 달구어 죄인의 몸을 꿰거나 입·코·배 등을 꿰어 공중에 던지기도 하고, 철로 만들어진 매가 죄인의 눈을 파먹는 등 극심한 형벌을 받는 지옥으로 알려져 있다.

#8

“2014년, 송포 세 모녀 자살 사건을 아느냐?”

염라대왕이 다시 ‘네놈’이라고 부른 것이 계속 마음에 걸려 자못 의연한 척하면서도 나는 대왕의 심기를 살피고 있었다. 그때 대왕이 전혀 예상치 못한 질문을 던졌다. 그도 그럴 것이 송포 세 모녀 자살 사건은 나와 전혀 관련이 없었다. 당시 나는 대법원과 법무부 등 이런저런 정부기관 위원회에서 활동했었지만, 어디까지나 본업은 관서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였다. 그런 나에게 왜 이런 뜬금없는 질문을 하는 것일까?

송포 세 모녀 사건은 당연히 기억한다. 2014년 2월, 아직 찬바람이 감돌던 늦겨울 일어난 불행이었다. 단독주택 지하 월세를 살던 세 모녀가 큰딸의 만성 질환과 어머니의 실직으로 전 재산 현금 70만 원을 집세와 공과금으로 남기고 번개탄을 피워 자살한 사건이다. 당시 집 주인에게 남긴 ‘정말 죄송합니다’라는 메모가 사람들 모두의 가슴을 더 아프게 했고, 정치권은 관련법을 개정·입법하는 등 복지 사각지대 해소에 나섰다.

“알고 있소.”

염라대왕이 어떤 의도로 질문하는 것인지 알 수 없어 나는 짧게 대답했다. 당시 사회적 파장이 적지 않은 사건이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나와는 무관한 사건이라 덧붙일 말도 딱히 없기도 했다.

“너는 그 사건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

염라대왕 입에서 다시 ‘너는’이라는 이인칭이 흘러나와 안도감이 들기는 했지만,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단순히 불행하고 가슴 아픈 사건에 대한 ‘생각’을 묻는 것인지, 그 사건이 갖는 ‘의미’를 묻는 것인지 선뜻 파악되지 않았다. 아니, 그 질문에 담긴 속뜻을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그 사건에 대해 알고 있다면서 왜 대답이 없느냐. 그들 죽음에서 느끼는 게 아무것도 없더냐? 그들이야말로 네가 말한 진정한 가재고, 붕어고, 개구리인데. 아니다, 그 세 모녀는 가재, 붕어, 개구리보다 못한 이들이라 해야겠구나.”

염라대왕의 말에서 가시가 느껴졌다. 세 모녀의 불행을 이야기하며 가재, 붕어, 개구리를 언급하는 걸 보면 내가 가진 것들을 꼬집는 게 아닐까 싶었다.

“왜 느끼는 게 없겠소, 당시 세상 사람 모두 가슴 아파했고, 나 또한 세 모녀의 극단적 선택에 적잖이 놀랐으니 말이오. 그래서 사회안전망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소. 그리고 내가 가진 것들에 감사함을 느꼈던 같소...”

“가진 것에 감사함을 느꼈다... 그래서 너는 무엇을 했더냐?”

“당시 나는 대학 교수였소. 몇몇 정부기관에서 위원회 활동을 하긴 했지만, 내가 직접 나서서 무얼 할 만한 위치는 아니었소. 그러니 나 또한 세상 사람들과 함께 가슴 아파하며, 다시는 이런 불행이 일어나지 않도록 정치권에 사회안전망 구축을 촉구했을 따름이오.”

답변을 듣고 있는 염라대왕 얼굴은 무표정했다. 치켜세워져 있는 눈꼬리도, 거칠게 튀어나온 콧등도, 서로 맞닿아 포개져 있는 입술도 조금의 미동도 없어 완벽하게 재현된 마네킹 같았다. 하지만 눈빛만큼은 달랐다. 너무도 또렷했다. 이전처럼 불꽃 튀는 강렬함이 아니라 맑고 투명하다 못해 극도의 냉정함이 느껴지는 그런 눈빛이었다. 그래서일까, 등골이 오싹해지는가 싶더니 귓등에서 한기가 느껴졌다.

“그래, 그럼 이후 네가 민정수석으로, 법무부 장관으로 몸담았던 정부에서는 무얼 했느냐? 물론 너는 이 질문에 또다시 검찰개혁을 들먹이겠지만, 내가 묻고자 하는 것은 그런 배고픈 죽음을 막기 위해 무엇을 했는지 묻는 것이다. 네 입으로 너는 사회적 불평등 해소에 앞장섰다고 하니 말이다.”

부연 설명을 곁들인 염라대왕의 질문에서 대왕이 왜 송포 세 모녀 사건을 거론하는지 알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여론과 민심을 통해 국민들 뜻을 살펴 공직사회 기강을 바로잡고, 법률적 보좌와 반부패 업무를 담당하는 민정수석이었다. 그리고 지금껏 누누이 이야기한 것처럼 검찰개혁을 위해 법무부 장관직을 수행했다. 다시 말해 기획재정부 등 경제부처나 복지부처에서 일한 게 아니다. 그러니 나로서는 국민들이 먹고사는 문제나 복지 문제에 직접적으로 관여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대왕의 질문이 억지스럽게 느껴졌다.

“대왕께서도 알고 있다시피 나는 민정수석과 법무부 장관을 지냈소. 그것도 법무부 장관직은 검찰개혁을 반대하는 검찰주의자들 때문에 한 달 만에 물러나야 했소. 대왕께서 무엇을 묻고 있는지는 알 것 같소만, 송파 세 모녀와 같은 비극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일에는 관여할 수도 없었고, 관여할 시간도 없었소. 이점 헤아려 주시오.”
“네 말은 옛 왕과도 같은 대통령 최측근으로 민정수석과 법무부 장관을 지냈지만, 백성들 먹고사는 문제와는 무관한 일이라 할 수 있는 게 없었다는 것이구나.”

“그렇소, 대왕”

염라대왕은 대꾸 없이 맑고 청명한 눈으로 나를 잠시 바라봤다. 그리고는 이승부의 어느 페이지로 눈길을 옮겼다. 순간 까마득한 정적이 흘렀다. 시간의 흐름조차도 멈춰버린 듯한 정적은 작은 먼지 하나마저도 동작그만을 외치게 만들었다. 또다시 오한이 느껴졌다. 등골에 식은땀이 맺혔다. 사위가 칠흑 어둠으로 꽉 막혀 있어 가슴을 더욱 무겁게 압박하는 것만 같았다.

다행히 정적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이승부로 눈길을 돌려 조금의 움직임도 없던 염라대왕이 고개를 들어 다시 나를 응시했고, 이어 그의 목소리가 허공을 갈랐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대왕의 목소리가 어둠에 파장을 일으키자 옥죄던 가슴도, 오한도 그 강도가 약해졌다. 왜 이런 신체 변화가 일어나는 것일까?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공포 속에서의 나, 그리고 순간적으로 마주하는 침묵과 정적이 그 공포를 더욱 극한으로 끌어올리기 때문일까.

“이승부를 살펴보니 네가 민정수석과 법무부 장관이었던 그 기간에도 한양을 비롯한 조선국 곳곳에서 열한 가족이 생활고를 이기지 못하고 자살했다. 국민을 위해 검찰개혁을 했다는 시기에도 있었고, 이후에도 계속됐다. 그렇다면 이 모든 책임은 너의 왕 명재욱에게 있는 것이더냐? 그자는 사건이 있고 나서 ‘안타깝다, 부실한 복지제도 때문’이라고 했으면서도, 정작 대통령이 되고나서 발생한 일가족 자살에는 침묵했던데.”

“그렇게 볼 수도 있겠소만, 대통령이 모든 국민들 생활을 일일이 다 알 수도 없는데 그걸 명 대통령 책임이라고 하는 건 지나치다 싶소. 더욱이 옛말에 ‘가난은 나라님도 구제하지 못 한다’고도 하지 않았소.”

염라대왕 말에 대꾸하고 나서 ‘아차’ 싶었다. ‘가난 구제는 나라님도 못 한다’는 옛말을 들먹였으니 말이다. 대왕이 대통령을 왕 운운하는 바람에 나도 모르게 그 말이 나와 버렸다. 평소 좋아하지도 즐겨 쓰지도 않는 말인데, 하필이면 이런 때 튀어나온 것이다.

더욱이 조선은 봉건군주국이 아니다. 그러니 당연히 대통령은 왕이나 나라님이 아니다. 그리고 운 좋게 태어나 모든 주권을 가진 왕은 백성들 가난을 구제하지 못해도, 국민주권에 의해 선출된 대통령은 모든 국민이 최소한의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 그게 전제군주 왕과 공화국 대통령의 차이다.

“그래 맞는 말이다. 네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 줄은 몰랐다만, 가난 구제는 나라님이라 해도 다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오랜 세월 저승을 관장하고 있는 내가 그걸 모르겠느냐. 하지만 한 명의 백성이라도 생활고를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면 그건 왕의 잘못이고, 또한 벼슬아치들 잘못이다. 더욱이 세습 왕과 달리 백성들 선택으로 대통령이 된 자와 그 관료라면 책임이 더 클 수밖에 없고. 그럼에도 너는 네가 맡은 일과는 관련이 없어 할 수 있는 게 없었다고만 한다. 그러면서도 검찰개혁은 백성을 위한 것이었다고 말하는데, 백성들에게 진정 필요한 게 무엇인지 모르는 것 같구나.”

“대왕, 한마디 해도 되겠소?”

질문이라기보다 질책에 가까운 염라대왕의 말이 끝나고, 잠시 어떻게 해야 하나 망설였다. 반박이든 내 입장이든 전하고 싶은데, 혹여 대왕의 심기를 건드리게 될까 걱정이 앞섰기 때문이다. 그래도 무슨 말이든 해야 할 것만 같아 대왕에게 양해를 구하는 의미에서 물었다.

“그래, 해 보거라. 할 말이 있는 듯한데.”

“고맙소, 대왕. 무엇보다 먼저 나라님도 가난 구제는 못 한다고 한 말은 내 실수요. 그러니 바라건대 그 말은 못 들은 것으로 해주시오. 은영 중에 나온 말일 뿐 평소 내 생각과는 거리가 먼 것이오. 그러나 이 말만은 하고 싶소. 생활고를 이기지 못하고 일가족이 극단적 선택을 하는 건 정말 안타까운 일이고, 내가 민정수석에 법무부 장관일 때도 그런 일이 있었다니 도의적 책임이 느껴지오. 하지만 민정수석이나 법무부 장관이 경제부처나 복지부 업무를 참견할 수는 없소. 그건 명백한 월권행위니 말이오. 아마도 그건 대왕께서 내가 살다 온 조선의 통치 시스템을 잘 몰라서 하는 말 같소.”

최대한 조심스럽게 현실적인 한계와 내 입장을 염라대왕에게 전했다. 그럼에도 개운하기보다 뭔가 모를 찜찜함이 느껴졌다. 괜히 대꾸했다거나 후회된다거나 하는 판단이 아니라, 무엇이라 정확히 표현할 수 없는 그런 느낌이 들었다.

“그렇더냐. 너는 여전히 내가 왜 송포 세 모녀 사건을 거론했는지 그 이유를 모르고 있다. 너는 늘 타인의 아픔을 공감하는 척 떠들며 세상을 바꿔야 한다고 입바른 소리를 해댔지만, 결국 그 모두는 자신을 위한 가식이었고 알량한 공명심을 위한 위선일 뿐이었다. 그래서 애초 너의 당돌함에 호기심이 생겨 여기까지 온 것이기는 하나 네 스스로 그걸 느끼길 바랐는데, 아무래도 무리인 것 같다. 하여 더 이상의 대화는 무의하니 이걸로 너에 대한 심문을 마치고 판결을 내리겠노라.”

“......”

염라대왕이 말끝에 달라붙은 ‘판결’이라는 단어가 나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너무도 갑작스런 말이라 심장이 멎는 것만 같았다. 판결이라니 이 무슨 말인가. 나는 아직 다하지 못한 말들이 많다. 더욱이 최후진술도 없이 판결이라니 이건 안 될 말이다. 이승이든 저승이든 죄를 심판하기 전에 최후진술 기회는 보장돼야 한다. 그건 피의자에게 주어지는 최소한의 방어권이다. 하지만 순식간에 얼어붙은 나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교몽당(蛟夢堂)

무간지옥.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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